연말과 크리스마스에 붙여
연말과 크리스마스에 붙여
  • 임 솔
  • 승인 2017.12.26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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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하 원장 (안성브니엘요양원)


벌써 연말이다.

엊그제가 2017년 새해였는데 벌써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는다.크리스마스와 연말이면 으레껏 길거리에 구세군의 자선남비가 등장하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손길들에 대한 소식들이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엊그제는 함평군 군청 주민복지실장실에 검정 비닐 봉투에 동전과 꼬깃꼬깃한 천원, 오천 원, 만 원짜리 화폐가 한가득 들어있는 총 금액은 68만1660원을 불우 이웃을 돕는데 사용해 달라고 하면서 익명의 기부자가 놓고 갔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기사를 접할 때마다 참으로 아직까지는 이 세상이 그래도 살만하다고 입을 모으곤 한다. 그러나 올해 복지시설들에 기부하는 일들은 예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불우한 가족으로 위장해 사회에서 주어지는 성금과 도움의 손길을 악의적으로 이용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과 더불어 지난 8월 사이비 기부단체 새희망 씨앗에서 성금 128억여 원 중 2억여 원만 불우이웃에게 주고 나머지를 호화 요트 놀이와 개인적인 재산 착복으로 횡령한 사건 등으로 가뜩이나 일찍 찾아온 한파만큼이나 불우이웃에 대한 사람들의 온정은 차갑게 얼어붙어버렸다.

2006년 4월 25일 SBS SOS 긴급출동 제작팀에서 나에게 전화가 왔다. 경기도 화성에서 55년 동안 노예로 살아오신 한 할아버님을 평생 무료로 위탁할 수 있느냐는 전화였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흔쾌히 그 어르신을 우리 요양원에 모시겠다고 했다.

그 다음날 나도 전혀 모르던 방송국 카메라들이 들이 닥쳤고 이흥규 할아버지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이 매일 카메라에 담겼다. 그리고 5월초에 방영된 일명 '현대판 노예 할아버지' 사건은 대한민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갈 만큼 거대한 태풍이 됐다.

화성의 한 부자 집에서 2대째 노예로 살면서 새벽 동틀 무렵부터 밤이 되도록 온 종일 밭 등에서 노예처럼 일하면서 돼지우리 보다 못한 곳에서 잠을 자고 개밥을 먹듯 음식을 먹고 팬티는 너덜너덜하다 못해 삭아서 도대체 속옷인지 조차 분간을 못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온 국민은 눈물을 흘렸고 국회에서는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돼 현장을 방문하고 해당 면사무소의 책임자들은 직위 해제 등의 중징계를 받는 등 참으로 엄청난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가해자는 구속됐고 징역형을 받고 수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고 할아버지를 동정하는 온정의 손길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났다. 처음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분들이 내 카페를 찾아 할아버지를 위로하고 많은 분들이 우리 요양원을 찾아와서 할아버지에게 많은 사랑과 정을 드리는 일이 날이면 날마다 이어졌다.

그리고 11년의 세월이 흘렀고 할아버지는 지금도 건강하게 우리 요양원에서 잘 지내고 계시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몇몇 분들이 10년이 넘도록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불쌍한 한 할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먹거리를 보내 주고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은 참으로 우리 사회에 날개 없는 천사들이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나의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어려서부터 용돈을 모아 아프리카에 있는 한 어린 아기를 위해 월 5만원씩 사랑의 열매를 보내고 있는데 오랫동안 계속된 사랑으로 그 어린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며 잘 생활하고 있다는 그 아이의 사진을 얼마 전에 보고는 내 가슴 한편이 뿌듯해지고 따뜻해짐을 느꼈다. 우리의 5만원은 별 것 아닌 돈이지만 아프리카 빈민국가에서는 온 가족의 한 달 생활비인 것이다.

매 년 이 맘 때면 동사무소나 복지시설에 동전 천사들이 나타나고 어떤 분은 십년이 넘도록 매년 연말마다 익명으로 거금을 불우이웃을 위해 써 달라고 하면서 동사무소에 놓고 간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연말과 크리스마스를 맞으면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며 마치 연말 행사처럼 지내곤 하지만 이흥규 할아버지를 십년이 넘도록 꾸준히 돕는 분들이나 매년 잊지 않고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성금을 내 놓는 익명의 기부자들처럼 나보다 못한 이웃들, 병들고 가난하고 복지 사각 지대에서 신음하는 이웃들에게 조금씩이라도 습관적으로 돕는 사랑을 나눈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도 더 확실히 따뜻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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