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내가 본 음식점 별난 이름들
[수필]내가 본 음식점 별난 이름들
  • 나창호 (수필가, 전 부여군 부군수)
  • 승인 2020.09.2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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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창호 수필가, 전 부여군 부군수
나창호 (수필가, 전 부여군 부군수)
나창호 (수필가, 전 부여군 부군수)

나는 길을 걷거나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날 때면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다. 평소에 자주 다니는 익숙한 거리가 아닌 낯선 거리면 더 그렇다. 그건 길거리의 가게나 음식점 등의 간판을 살펴보는 버릇이다.

근래 새로 생긴 집은 뭐하는 집인가 하는 호기심이 일고, 별난 이름을 가진 가게를 보면 흥미롭다. 색다른 메뉴를 취급하는 음식점은 더 관심이 가기도 하지만 음식점 이름이 그냥 평범하면 곧 잊히고 만다. 반면에 허름한 집이라도 상호가 독특하면 비교적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가 기억하는 별난 이름은 아주 오래 된 이름도 있고 근래에 본 이름도 있다.

지금은 없어진지 꽤 오래 된 음식점의 별난 이름이 떠오른다. 860번 버스가 괴정사거리에서 롯데백화점 쪽 좁은 길로 다닐 때니 무척 오래됐다. 롯데 백화점 옆길 2차선 도로 건너편에 ‘곳 망할 집’(‘곳’은 ‘곧’이어야 하는데 간판이 그렇게 돼 있었다)-이라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지날 때마다 ‘참 별난 이름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한편으로 음식점 사장님이 ‘우리 집은 음식을 푸짐하게 주어 곧 망할 것’이라는 심오한 뜻을 품고 이름을 그리 짓지 않았을까하고 짐작했었다. 그런데 음식점 이름으로는 적절치가 않아 보였다. 설령 그런 거룩한(?) 뜻을 지닌 이름일지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속내를 알고 찾아 갈 것인가. 차라리 직설적으로 ‘푸짐한 집’이라고 했으면 손님들이 더 많이 찾지 않았을까.

그 집은 상호 때문인지 어떤 다른 사정 때문인지 모르지만 오래지 않아 문을 닫고 말았다. 내 생각에도 그 이름은 왠지 어설프고 상서롭지 못했다.

용문동 쪽에서 수침교 바로 위에 있는 유등천 징검다리를 건너면 태평동이다. 뚝방을 넘어 태평동 성당 골목길을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면 태평시장 정문으로 이어지는 큰 도로가 나온다. 조금 걷다보면 돼지고기 갈매기살 집이 나오는데 이 집 이름도 별나다. 상호가 ‘돈푸대’다. 단체예약을 환영한다는데 얼마나 장사가 잘 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어쩌다 지나친 것이지 음식을 먹어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식 맛이 좋은지 손님이 많은지는 알 길이 없다. 돈은 많이 벌수록 좋다. 다다익선이 이집 사장님의 속내 아닌가 싶다.

반면에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단지 내 짐작이지만) 과유불급이니 돈을 적당히 벌고 싶은 집이 있다. 서대전역 후문 시영아파트에서 북쪽으로 가다보면 얼마지 않아 도로변에 돼지고기 전문집이 나오는데 상호가 ‘돈(豚) 보따리’다. 보따리는 아무래도 푸대 보다 작다. 내 욕심 같아서는 상호를 ‘돈(豚) 창고’로 짓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돼지고기가 창고에 가득하면 돈이 엄청 벌릴 것 아닌가?

또 한 집을 소개해본다. 서대전역 정면 광장에 접한 도로를 따라 서대전역 사거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도로 건너편 골목 초입에 숯불 닭갈비집이 보이는데 상호가 ‘계탄집’이다. 아무래도 사장님이 푸짐한 목돈을 만지고 싶은 모양이다. 상호대로라면 이미 계를 탔으니 목돈을 만지고 있을 테지만 실제로 계를 타서 그리 이름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계를 탈집처럼 목돈이 많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작명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하고는 전혀 무관한 집이지만 계가 깨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에도 별난 이름의 상호가 있다. 서산시에 있는 딸애의 신접살림집에서 하루를 묵고 온 일이 있다. 이른 아침에 집 가까이의 호수공원을 산책하다가 도로변을 바라보니 통닭집의 이름이 야리꾸리 했다. 흰 글씨가 유달리 커서 (다른 글자는 빨간색으로 아주 작게 썼다) 눈에 확 띄는데 ‘누나 홀닭’(읽으면 누나 홀딱으로 읽힌다)이었다. 본래 이름은 ‘누구나 홀딱 반한 닭’인데, 나이가 많은 나는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핸드폰으로 찍었다.

아무래도 사장님이 나이 드신 분이 아닌 젊은 사람이지 싶었다. 나이가 지긋한 분이 남사스럽게 이런 이름을 짓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님도 젊은이들이 많을 것 같았다. “저녁에 술 한 잔 할까?”, “어디서?”, “누나 홀딱 집 어뗘?”, “좋지! 그럼 이따 누나 홀딱 집에서 만나.” 젊은이들의 대화를 상상해보면 조금 야릇하면서 민망하다.

이집 상호는 언뜻 보면 돈 하고는 무관한 것 같지만, 돈은 사람을 끌어야 버는 것 아니겠는가. 상호가 사람들 뇌리 속에 박히라고 그리 지었지 싶다.

이번에는 시골의 재미난 상호를 하나 소개해본다. 8년 전쯤 부여군에서 현직으로 근무할 때 외산면 소재지에서 본 허름한(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는 그랬다)고기 집 이름이 ‘그냥 고기집’이었다.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별났다. 깊은 뜻이 밴 것 같았다. 고기 집이면 그냥 고기 집이지, 원조니 특수부위니 하는 말이 왜 필요하냐고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돈과는 무관할까? 아무래도 시골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서 저렴한 값으로 손님들을 많이 끌지 않았을까 싶다.

가게이름들이 재밌고 별나다 느껴져서 거론을 했지만 어느 집에서나 음식을 직접 먹어본 일은 없다. 때로는 업무로 시간이 맞지 않아서, 그 집 앞을 지날 때 식사 때가 아니라서, 때로는 혼자라서 그랬다. 요즘도 최저임금 인상 여파와 코로나-19 사태로 자영업자들이 경영난에 허덕인다는데 부디 영업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 이제 나도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한번쯤 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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