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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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 솔
  • 승인 2018.06.1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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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박춘우



지구인의 축제 2018 러시아 월드컵이 6월 14일 개막식을 성황리에 치르고 15일 주최국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경기를 시작으로 7월 16일까지 총 33일간 대장정에 올랐다. 세계 최강 독일, 북중미 최강 멕시코, 북유럽 강호 스웨덴과 함께 죽음의 F조에 속한 우리나라는 오늘 오후 9시 스웨덴과의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을 벌인다. 쉽지 않겠지만 오늘 경기에서 승리해야만 온 국민의 염원인 16강에 오를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힘이 부친 건 사실이지만 공은 둥글고 우리 선수들이 필승의 의지로 죽을힘을 다하여 싸운다면 우리는 승리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교육원장으로 3년 동안 근무를 했었다. 브라질은 말 그대로 축구의 나라였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일요일 저녁, 브라질사람들은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가는 관심이 없고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TV 축구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축구 스타가 바로 대통령이었다. 

매 주말이면 골수팬들은 경기 몇 시간 전부터 먼 길을 걸어 축구 경기장을 찾거나 거리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TV에 등장하는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환호한다. 골이 나면 폭죽을 쏘아대며 자기가 골을 넣은 것처럼 좋아한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이상으로 모든 국민이 선호하는 팀이나 선수가 있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면 그 순간 천국, 패하면 바로 지옥이다. 

어린 시절, 학교나 동네 공차기에서 나의 포지션은 대부분 골키퍼였다. 그 역할을 잘해서가 절대 아니었다. 운동신경이 유달리 좋지 않았던 나는 결정적 순간에 헛발질을 일삼았고 그래서 주어진 특별 임무였던 것이다. 가끔 알까기를 해서 비난받는 게 싫었지만, 공을 힘들게 쫓아다니거나 무서운 몸싸움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나로서도 골키퍼가 은근히 싫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우리 팀이 질 때 모든 패배의 책임은 언제나 최종 수문장인 내가 뒤집어썼다. 그러나 다음 시합에서 모두 공격수를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문지기는 어김없이 내 차지가 되었다.

군 졸병 시절에는 더 비참했다. 거의 매주 주말마다 술 생각이 나면 선임 병은 이웃 중대와 막걸리 내기 축구 시합을 벌였다. 말이 중대지 예비군과 함께 편성된 부대라 1개 소대 병력밖에 되지 않았고, 외출 병을 빼면 내가 빠질 여유가 없었다. 나의 축구실력을 잘 아는 우리 고참병은 나를 최종 수비에 박아놓고 공을 차기보다 무조건 상대방 다리를 차라고 명령했다. 마음이 유달리 심약한 내가 어떻게 하늘같은 상대편 선임 병을 찰 수가 있겠는가? 번번이 내 쪽이 뚫렸고, 그날 밤 우리 졸병들은 나 때문에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야만 했다.

교사 시절엔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만 되면 단합대회를 한다고 반 대항 축구를 했다. 내 축구 실력을 잘 아는 상대 팀들은 항상 담임선생님이 꼭 경기에 참가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몸싸움하기가 싫어 골키퍼를 한다고 했지만 어릴 때부터 장기인 알까기 실력은 성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옆 반 담임들은 공격수로 펄펄 날았고. 축구로 우리 반 아이들의 사기를 올려주기는커녕 학부님들과 반 아이들은 저런 담임을 믿고 어떻게 일 년을, 그것도 ‘고 3’을 보낼 수 있을까? 하고 크게 걱정을 했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지금, 누가 나보고 축구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없어 살 것 같다. 강요가 아니라 아예 축구를 하자고 하는 사람이 없어 좋다. ‘축구’라는 지긋 지긋한 귀신에서 풀려나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 그러나 간혹 TV에서 손흥민 선수가 진기 명기를 펼치는 걸 본 날 밤에는 축구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어이, 박이병! 공을 차지 말고, 병장이든 상병이든 그저 밀고 들어오는 상대방 정강이를 모질게 걷어차라고.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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