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고향엔 정다운 이야기가 있다!
내가 사는 고향엔 정다운 이야기가 있다!
  • 강명이
  • 승인 2018.10.04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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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면 산안리-귀농귀촌 이강천
제원면 산안리에 정착한 귀농인 이강천 씨
제원면 산안리에 정착한 귀농인 이강천 씨

제원 명암리가 고향인 이강천(60)씨는 요식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이다. 2002년 4월에 김포에서 가마솥해장국이라는 음식점을 시작으로 지금은 전국에 체인점이 100여 곳이 있으며 본점 1호인 가마솥해장국집은 100여 평의 규모로 부인과 아들이 직원 20여명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음식점을 시작하고 단 하루도 쉬어본적이 없었다는 이강천씨는 이젠 그리운 고향에서 그동안가족들과 열심히 살아 온 삶에 대한 보상으로 편안한 제 3의 인생을 살고 싶어 귀향을 하였다.

귀농인 이강천 씨가 김장용 배추를 본밭에 이식하고 있다
귀농인 이강천 씨가 김장용 배추를 본밭에 이식하고 있다

귀촌은 2017년인 작년에 하였으나 5년 전부터 귀촌을 위한 준비를 하였었다.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고향 주변을 찾아다녔으며 산 중턱으로 경사면이 있긴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지금의 이 자리가 마음에 들어 땅을 매입하고 집을 짓게 되었다.

이강천 씨의 새로운 보금자리
이강천 씨의 새로운 보금자리

농사도 짓기 위해 1천평의 땅을 구입하였으며 3백평은 대지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경사면을 평지로 다지기 위해 흙을 파내고 다시 흙을 채우고 돌을 쌓으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으며 디자인을 전공한 딸과 함께 설계하여 집을 지었다. 내부인테리어도 딸의 아이디어를 많이 반영하였는데 1층은 가족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카페 속 갤러리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였으며 그 속에 가족의 모습을 담아내어서 인지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다.

이렇게 자신과 가족들이 마음편한 삶을 누리게 되기까지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견디어내며 열심히 살아 온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강천씨는 많은 형제들 중에 막내 아들로 태어났으며 힘든 가정형편 때문에 제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이 아닌 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형님과 함께 서울에 올라가게 되었다. 처음에 취업한 곳이 사진관이었으며 1년 정도 일을 하였다. 그 곳을 그만둔 후에도 어린나이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어렵고 힘든 시간 속에서 부딪치고 견뎌내며 많은 일을 경험해 보았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안산에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규모가 큰 회사로 14년간 근무를 하였으며 노조위원장으로 8년 정도 활동을 하였었다. 노조위원장을 하다보니 회사와의 마찰이 있어 퇴직을 하게 되었으며 재취업을 하려고 하였으나 받아주는 회사가 없었다.

일없이 2년을 보내고 있는데 김포에 사는 형님이 같이 식당을 해보자고 하여 김포를 가게 되었다. 그 당시 부인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으며 자녀도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혼자 올라가게 되었다. 자본금이 넉넉하지 않아 좀 허름한 가게를 구해서 24시간 해장국 음식점을 시작하게 되었다.

음식점을 시작한 후 하루 2시간도 못자면서 혼자서 주방부터 서빙까지 모든 일을 하였다. 힘도 들고 초기에는 손님들이 적어 어려웠으나 차츰 손님들이 늘며 1년 정도 지나면서 이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몇 년을 열심히 하다보니 맛에 대한 좋은 평가와 해장국으로의 호응도가 높아지게 되고 수익도 늘게 되었다. 차츰 규모가 커지게 되고 체인점도 내게 되었다.

부인 장애선(61)씨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일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강천씨 부부에게는 지금은 출가하여 살고 있는 딸이 있으며 딸은 디자인을 전공하여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전문직으로 근무하였으나 결혼하여 손녀딸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그리고 동갑이지만 생일이 늦은 아들이 있다.

아들은 새로운 인연으로 입양을 하여 가족이 되었다. 안산에서 부인이 다니던 직장의 실습생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 아들의 나이가 25살 정도 되었었다. 부모없이 성장하였지만 다 자란 성년이어서 처음엔 가족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실습생으로 지내면서 유독 아내를 잘 따랐고 집에도 자주오다보니 정이 들어서 인지 실습이 끝나는 날 우는 모습을 보며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가족들의 합의와 본인의 간절함으로 새로운 아들이 생기게 되었다. 가족으로 함께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부분도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가족이 되었다.

대학교에 진학하여 학사과정도 마쳤으며 이젠 든든한 아들이 되어 아내에게서 운영을 배우고 있다.

이강천씨는 성공한 기업가답게 사회에 대한 봉사와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부인과 함께 사회에 도움을 주고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김포시로부터 감사패와 공로패도 받았으며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에 맞게 스포츠도 좋아하여 골프대회에서도 많은 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강천씨는 희노애락이 담겨있는 인생노트에 또 다른 삶을 써내려가기 위해 한 발을 내딛었다.

이 곳은 언제나 그리워했던 고향이고 가장 보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고향의 친구들이 있는 곳이다.

다행히 주변엔 고향의 이웃들이 살고 있으며 택지개발을 하여 집을 짓고 이사를 온 이웃들도 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농사도 지어보겠다고 호기롭게 받을 갈아서 배추묘도 사왔다. 그래도 걱정이 없다. 내가 사는 고향엔 서로서로 도와가며 정다운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한 잔 나누며 안부를 물어보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시골의 정겨움이 있으니까............

하루빨리 가족 모두가 이곳에서 살 수 있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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