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자유민주 언론의 바른 역할
[칼럼]자유민주 언론의 바른 역할
  •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 승인 2021.03.1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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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제3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버지니아 대학교 설립자이기도 한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나 다름없다.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산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써야할 글을 쓰지 못하고 산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또 알아야 할 진실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회는 얼마나 갑갑하겠는가.

폭군으로 이름난 연산군은 신하들의 충언이 두려워 신언패(愼言牌)를 목에 걸게 했다.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다(舌是斬身刀), 입을 닫고 혀를 깊숙이 숨기면(閉口深藏舌),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安身處處宇).” 한마디로 신하들의 입을 봉한 것이다. 언로를 막은 것이다. 군왕의 뜻에 거슬리는 직언을 하면 죽이겠다는 엄포 아닌가.

이 험악한 말은 중국 후당(後唐) 때의 재상이며 처세의 달인으로 알려진 풍도(馮道)(천하의 간신이라고도 한다)가 지은 시를 차용한 것이다. 풍도는 5대 10국 시대에 5왕조 8성씨 11명의 군주를 섬기며 오래도록 재상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처세술이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으로 왕조가 바뀔 때마다 처신을 바꾸고 새 군주의 비위를 맞추는 천하의 간신이었다는 말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풍도는 그가 지은 책에서 “자신은 군주를 섬긴 게 아니라 나라를 섬겼다”고 변명했다 한다. 간사하다.

다시 연산군 이야기를 해본다. 연산군은 신하들의 언로를 차단하고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한없는 권세를 누릴 것 같았지만 그도 끝내는 권좌에서 끌려 내려와야 했다. 폭정을 견디다 못한 신하들이 중종반정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강화도 교동 땅에 유배된 그는 화병이 들었는지 두 달 만에 병사했다니 절대 권력자의 비참한 말로가 아닐 수 없다.

중국대륙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진나라는 지록위마(指鹿爲馬) 때문에 멸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자가 진실을 가리고 거짓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2세 황제 호해(胡亥)는 간신 조고(趙高)의 꾐에 속아 뒷방 지기나 하며 주색에 빠진 채 정사를 조고에게 일임했는데 조고가 제멋대로 국정을 농단했던 것이다. 황제가 어리석어 간신을 통제하기는커녕 간신에게 되레 끌려 다녔던 것이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데도, ‘사슴이 아니라 말’이라고 말하는 관료가 없었으니(사실대로 말이라고 말한 용기 있는 신하는 모두 숙청을 당했다)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 있었겠는가? 수많은 인명살상과 재물을 불태우는 참혹한 전쟁 끝에 성취한 통일제국이 겨우 15년 만에 무너지고 말았으니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한 폐해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한다.

어느 시대나 권력유지의 욕구가 크고 실정을 숨기려는 집권자는 언론을 통제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아무리 절대 권력을 지녔다 해도 언로를 차단하고 언론을 통제하면 종국에는 파멸하고 만다는 지엄한 사실을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워터게이트사건으로 하야한 닉슨 전 미(美)대통령은 “지구를 쪼갤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도 언론을(기자 하나를) 이기지 못해 물러나야 한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진실을 밝혀내는 언론의 힘은 이렇게 강하다.

언론은 막강한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제4의 권력이면서 사회를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요, 어둠의 그늘을 밝히는 빛이다. 바른 길을 인도하는 목탁이다. 하지만 이는 언론이 정론직필(正論直筆)하고, 비판기능을 다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언론이 사론곡필(邪論曲筆)하고, 정권에 빌붙어 비판기능을 저버린다면 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집권세력은 어두운 면은 숨기고 밝은 면만을 드러내려 하고, 부정적인 면은 감추고 긍정적인 면만 보이려는 속성이 있다. 이럴 때 언론이 시시비비를 가려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부정적인 면을 같이 밝혀야 바른 언론이다.

정권이 진나라의 조고 같은 모습을 보일 때 언론이 이를 단호히 배격해야 참 언론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언론은 풍도처럼 처세해서도 안 된다. 정작 말해야 할 때 혀를 깊숙이 감추고 몸을 사리면 옳은 언론이라고 할 수 없다.

언론은 거짓이나 허위사실을 밝혀 국민권익을 지켜줘야 마땅하다. 따라서 언론 스스로도 허위사실을 보도하거나 가짜뉴스에 편승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 집권여당이 언론보도에 의해 피해를 입을 경우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법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가짜뉴스를 보도하는 일부 언론 때문일 테지만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현대판 신언패가 아닌지 우려스럽다. 언론이 위축되면 사회적 진실이 가려질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자유민주국가의 언론은 강해야 하며, 국민권익을 우선시 하고 지켜주는 본래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 언론의 바른 역할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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