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농지 규제, 이제는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

-쌀이 부족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농업진흥지역 제도 -귀농·귀촌을 외치면서 소득사업은 막는 모순부터 풀어야 -청년 유출과 지방소멸 막으려면 지역의 재산과 일자리 활용해야

2026-08-27     박범홍 공공연대노동조합 금산군지부장
박범홍

쌀이 부족하고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대에 만들어진 농지 규제가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개인의 재산권과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다면 이제는 시대에 맞게 제도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 농지 규제의 역사는 식량 부족 문제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1975년 절대농지가 법제화됐고, 1990년 농업진흥지역 제도가 도입됐다. 1992년에는 절대농지와 상대농지가 폐지되고 농업진흥지역으로 전환됐다. 이후 1996년 농지법이 시행되면서 농업진흥지역 제도는 농지법 체계 안에 자리 잡았다.

당시에는 식량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농지를 보전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컸다. 농업 생산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 필요성도 분명했다. 농업용수를 공급받는 농지를 비롯해 식량 생산에 필요한 토지를 보호하기 위해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했다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지금은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정부가 쌀 수급 조절을 위해 벼 재배 면적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하고, 각종 지원을 통해 쌀 생산량을 조절하는 정책까지 시행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수십 년 전 식량 부족 시대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농지를 묶어두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모든 농지가 같은 조건에 놓여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가가 세금을 투입해 경지정리를 하고 농업 생산 기반을 조성한 지역이라면 농업진흥지역으로 관리하는 데 어느 정도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경지정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곳까지 농림지역으로 묶어두고, 심지어 임야까지 농업진흥지역에 포함되는 사례가 있다면 현실과 제도가 맞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부 지역의 규제를 해제한다면 비슷한 조건에 있는 지역에도 합리적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특정 지역만 해제하고 다른 지역은 계속 묶어두는 방식이라면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규제를 일부 풀기 위해 다른 지역을 다시 묶어야 한다는 방식 역시 현장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농지 보전이라는 정책 목적을 존중하더라도 모든 토지를 획일적인 기준으로 묶어놓는 방식은 재검토해야 한다. 국가가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경지정리를 한 농지와 그렇지 않은 토지를 구분하고, 실제 농업 생산성과 지역 여건을 반영해 규제 수준을 달리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지방의 인구 감소와 청년층 유출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수도권 과밀 문제와 지방소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귀농·귀촌을 꾸준히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귀농·귀촌한 사람이 지역에서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은 충분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사람들이 농촌과 소도시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자리와 소득 문제다. 취업할 곳이 없다면 개인이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도 마련돼야 한다. 식당을 운영하거나 제조업을 하거나 관광·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등 지역의 여건에 맞는 다양한 소득사업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농림지역과 농업진흥지역에 묶인 토지는 활용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농업 외의 사업을 하려 해도 각종 규제에 부딪힌다. 귀농·귀촌을 권하면서 정작 귀농·귀촌 이후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하는 셈이다.

정책의 목표와 현장의 현실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기를 원한다면 단순히 귀농·귀촌 지원금을 지급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지역에서 일하고 사업하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농지 규제를 무조건적으로 풀자는 것이 아니다. 농업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농지는 보호하되, 실제 농업 활용도가 낮거나 지역 발전을 위해 합리적인 전환이 가능한 토지는 규제를 완화하는 등 현실적인 기준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개인의 재산권 문제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토지를 수십 년 동안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실제 활용에는 큰 제약을 받는다면 재산권 침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과거의 정책 목적이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그동안 지역 주민들은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꾸준히 요구해왔다. 지역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군수 등에게 주민 숙원사업으로 건의한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선거 때는 관심을 보이다가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되거나, 국토교통부 등 중앙정부의 소관이라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행정기관과 정치권이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주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파악했다면 실제로 어떤 규정이 문제인지 확인하고, 어느 기관이 권한을 갖고 있는지 따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특히 기관장이 될 때마다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 청년 유출을 걱정하는 원론적인 말만 반복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공무원이 작성한 보고서에만 의존해 지역의 현실을 판단해서도 안 된다. 현장을 직접 찾아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규제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청년들이 도시로 떠나는 이유도 단순히 농촌이 싫어서가 아니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취미와 문화생활을 즐길 인프라도 부족하다. 결국 사람이 정착할 수 있는 생활 기반과 경제적 기반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귀농·귀촌 정책을 성공시키려면 농촌으로 오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와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농업에 종사할 사람은 농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농업과 다른 분야를 결합해 소득을 창출하려는 사람에게는 합리적인 범위에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쌀이 부족하고 국민이 배고팠던 시대에는 농지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국가적 과제였다. 그러나 지금의 농업 환경과 인구 구조, 지역 경제 여건은 당시와 크게 달라졌다. 시대가 바뀌었다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농업진흥지역 제도의 취지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켜야 할 농지는 지키되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는 과감하게 손질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농업을 살리고 지방을 살리는 길이며, 귀농·귀촌을 단순한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정책으로 만드는 출발점이다.

수십 년 전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농촌을 지키는 길인지, 아니면 시대 변화에 맞춰 규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지역 주민과 청년들이 스스로 소득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농촌을 살리는 길인지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