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선관위, 국민 신뢰 잃으면 존재 이유도 흔들린다

-투표용지 부족·투표자 수 허위 입력·채용 비리…선거관리 총체적 책임론 -행안부·지자체에 행정사무 분담하고 독립적 검증 강화해야 -독립성은 면죄부 아니다…국민이 검증할 수 있는 선거제도로 바꿔야

2026-11-01     장성수 발행인
장성수

선거의 공정성을 지켜야 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신뢰 위기에 직면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투표자 수 허위 입력, 채용 비리 문제가 잇따라 불거졌다. 국민의 참정권을 보호해야 할 기관에서 발생한 문제인 만큼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 

사실부터 명확히 짚어야 한다.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에서는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선관위는 준비와 대응이 미흡했다며 사과했다. 투표용지 수요 예측과 비상 물량 확보, 현장 대응 체계를 전면 점검해야 할 이유다.

투표자 수 통계 문제도 심각하다. 특별검사팀은 10월 22일 전국 36개 시·군·구 선관위에서 시간대별 투표자 수를 허위 입력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통계 허위 입력과 실제 선거 결과 조작은 별개의 문제다. 입력 경위와 책임자, 최종 집계에 미친 영향은 수사와 증거를 통해 밝혀야 한다.

채용 비리 역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감사원은 2025년 선관위의 경력경쟁채용 291회에서 878건의 규정 위반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공정성을 지켜야 할 기관에서 채용 절차의 공정성이 훼손된 것이다. 내부 통제와 인사 감독 체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없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부당한 개입을 막기 위한 독립성은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독립성이 책임을 피하는 방패가 될 수는 없다. 잘못이 확인되면 지위와 관계없이 책임을 묻고, 조사 결과와 후속 조치를 공개해야 한다.

개혁의 핵심은 선거사무의 재설계다.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정 업무를 분담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투표소 시설 관리와 물자 운송·보관, 현장 인력 확보와 교육은 지자체의 행정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다. 행안부는 전국 공통의 업무 기준과 교육 지침, 비상 대응 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

반면 선거법 집행과 개표 감독 등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한 업무는 독립적인 감독 체계 아래 둬야 한다. 행정부에 선거관리 권한이 집중되면 정치적 개입 위험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별 권한과 책임을 법률로 명확히 나누고, 기관 간 상호 검증을 의무화해야 한다.

선거 과정의 기록과 검증도 강화해야 한다. 투표용지 제작부터 배부, 투표함 이송, 개표와 최종 집계까지 모든 절차를 기록해야 한다. 투표자 수를 수정할 때는 변경 사유와 담당자, 승인 시점을 남겨야 한다. 외부 감사와 독립적인 검증을 통해 오류와 부정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선관위 해체도 논의 대상에서 배제할 필요는 없다. 다만 조직을 없애는 것만으로 공정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현행 체제 개선과 조직 재편, 행정사무 분담 방안을 비교해야 한다. 헌법상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는 제도 설계가 전제돼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선관위의 존립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한 표가 공정하게 관리되는 일이다. 확인된 잘못은 엄정하게 책임을 묻고, 의혹은 증거로 규명해야 한다. 국민에게 선거 결과를 믿으라고 요구하기 전에 국민이 직접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정당성을 얻는다.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조직의 권한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개혁의 기준은 조직의 존속이 아니라 국민의 참정권과 선거의 공정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