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향교, 제431주기 권종군수 추모 제향
금산향교, 제431주기 권종군수 추모 제향
  • 장성수 기자
  • 승인 2023.08.0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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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도 없이 매년 제각 앞에서 초라한 제례의식 치러...
초헌관 박범인 군수가 제례의식을 하고 있다
초헌관 박범인 군수가 제례의식을 하고 있다

8일, 권종 군수 제431주기 추모제향이 제원면 저곡리 산 25-1번지 권충민공순절비 앞에서 거행됐다. 

이날 추모제향은 금산향교(전교 곽근태)에서 주관한 가운데 박범인 금산군수(초헌관), 김기윤 금산군의회 의장(아헌관), 김한중 금산군유림대표(종헌관)를 비롯해 지역기관단체장, 지역주민과 관계 공무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11시, 전폐례(奠幣禮/초헌관이 신에게 폐백을 드리는 의식)를 시작으로 제례의식이 거행됐다.

초헌관 박범인 금산군수와 아헌관 김기윤 금산군의회의장, 종헌관 김한중 금산군유림대표
초헌관 박범인 금산군수와 아헌관 김기윤 금산군의회의장, 종헌관 김한중 금산군유림대표

임진왜란 때 금산을 지키다 순절한 권종 군수는 도원수 충장공 권율의 4촌 형으로 1592년 (선조 25년) 3월에 금산군수로 부임한 지 한 달도 안되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임진년 6월 22일 왜군이 영동군 양산면을 거쳐 금산군 제원면 저곡리 갯터로 몰려와 강을 사이에 두고 종일 격전이 벌어졌고 도강하려는 적을 제원 찰방 이극경과 함께 저지했다. 

권충민공순절비 앞 공간이 협소하다
권충민공순절비 앞 공간이 협소하다

그러나 숫자에서 열세였던 권종군수는 그날 밤 강을 건너오는 수많은 왜군과 혈전을 벌이다가 아들 준과 함께 장렬히 순국하였다. 

갯터 전투가 끝난후 큰아들 현이 시체들 속에서 권종군수와 동생 준의 시신을 거두어 포천 선영에 장사를 지냈으며 난이 끝난후 이정식(李正植)의 계청으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어 비를 세우도록 하였으며 1709년 (숙종 35년)에 충민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권충민공순절비는 홍문관 대재학 이승보 (李承輔)가 비문을 지었고 孫人 정호(鼎鎬)가 글씨를 썼다. 

또 이를 기리기 위해 1878년 이곳에 순절비가 세워졌고 1974년 비각도 조성됐으며 1984년 5월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24호로 지정되었다. 금산향교에서는 권종 군수의 이같은 우국충정을 기리고자 매년 음력 6월 22일 추모 제향을 봉행해오고 있다.

하지만 제향장소가 간이 의자 2줄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협소해 매년 제향을 치를때마다 애를 먹고 있다. 한편 유림에서는 권종군수는 금산과 나라를 위해 왜군과 맞서싸우다가 목숨을 바치신 분으로 높히 추앙해도 모자랄판에 이렇게 장소가 협소하고 초라한 장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후손된 도리가 아닌것 같다고 했다. 

지역주민들은 "풍전등화에 놓인 나라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분인데 장소가 협소하고 너무 초라하다면서 사당이라도 번듯하게 짓고 좀 더 넓은 공간을 확보했으면 좋겠다면서 권종군수의 애국충정과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고 후손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충절의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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