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
아버지의 일기
  • 박희숙 세종시 홍보정책 특별보좌관
  • 승인 2024.02.1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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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숙 세종시 홍보정책 특별보좌관
박희숙 세종시 홍보정책 특별보좌관
박희숙 세종시 홍보정책 특별보좌관

1960년생의 국민학교 시절, 방학 때면 으레 일기 숙제가 꼭 있었다. 노는 게 바빠 일기 쓰기는 며칠에 한 번씩 썼는데 그나마 한꺼번에 몰아 대충 썼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게는 더 싫은 것이 있었다. 집에서도 아버지의 철저한 감시(?) 속에 일기를 써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때당시 금산동중학교에서 영어교사이셨다. 3남 1녀 자식 중 유난히 내게 일기 쓰는 법을 가르치셨다. 학교에서도 가끔 하는 일기 검사도 귀찮았는데 집에서까지 간섭하니 짜증을 많이 냈던 기억이 있다.

가끔가다 어둠이 내려앉아 밤이 깊어 갈 때면 ‘오늘은 아버지께서 회식하시고 늦게 오시겠지?’라며 은근히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일기만큼은 철저히 검사하셨다. 또 영어 원음 동요 노래가 흘러나오는 미니레코드판을 이른 아침에 크게 틀고 단잠을 깨웠고 영어 노래까지 부르게 하곤 했다.

아버지의 열정은 참 남다르셨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미국의 평화봉사단원이 왔을 때도 아버지는 금산교육청에서는 예산이없다는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서울로 달려가 22살 ‘짐 브룩슨’을 기어이 금산동중학교로 데리고 왔다. 오직 제자들에게 원어를 배우게 해야 한다는 절실함 속에 주위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실행하셨다.

그때 당시 금산군교육청에서는 예산이 없어 안된다 했는데도 아버지는 기어코 삼촌 세 명과 제원리 시골집에 우리 형제들 대가족속에 짐 브룩슨을 데려다 놓고 같이 먹고 자고하며 동고동락 6개월 생활을 함께 살도록 했다.

그렇게 제원면 4Km 십리 신작로 길을 금산읍까지 걸으며 짐 브룩슨과 학교로 출근할 때면 아버지는 꼭 나까지 챙기셨는데, 그때 두 분의 영어 회화가 자연스럽게 내 귀에 담기곤 했다. 마이크로 통학 버스가 지날 때마다 뿌연 먼지 속을 뒤집어쓰고도 언제나 재미있다는 듯 씽긋 웃던 짐 브룩슨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짐 브룩슨은 당시 금산 학생들에게는 최초의 원어민 선생님이었다. 그렇게 3년간의 봉사가 끝나 서울 대학으로 떠났는데, 이후 박근혜 대통령시절때 과거 1970년대에 어려웠던 우리나라에 기꺼이 와서 봉사해주고 간 외국인 봉사자들을 초청하였다.

놀랍게도 그때 짐 브룩슨도 왔었다.

그는 금산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잊지 못할 박돈하 선생을 만나고 싶다고 하여 금산동중학교를 방문했는데, 미리 연락받은 아프신 아버지와 드디어 상봉한 날 그는 너무 기뻐 달려가면서 "Mr. 박~~~" 을 부르며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도 어느새 50대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어렵고 힘들었을 때도 언제나 "하면 된다."는 아버지만의 깊은 철학이 있으셨다. 아버지는 일기 쓰기, 글쓰기, 펜팔하기, 동시쓰기 등 점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그게 싫지 않았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담임을 맡았던 금산동중학교 2-3반 교실에 쓰여 있던 급훈을 본 적이 있다. " 하면 된다" 그리고 "I can do it"이라는 영문도 쓰여 있었다.

우리 형제들에게도 늘 말씀하셨다. “하면 된다!”, “해야만 된다!”, “해내고야 만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하면 된다’를 세뇌했던 아버지. 아버지는 이제 요양원 창밖을 바라보며 일기를 쓰고 계실지도 모른다.

언제인가 “I can Do It!”을 외치며 지금껏 살아오신 아버지를 뵙고 싶다며 5월 스승의 날, 부여 임천중학교 제자들이 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의 위치를 물어왔다.

각 기관에 자리 잡은 제자들이었다. 그때 당시 영어 교사가 부족하여 가정 선생님이 영어를 가르치는 시절이었으니, 전공하신 영어 교사가 임천중학교로 발령 나자 공부에 목마른 학생들이 아버지가 묵은 하숙집에 몰려들어 밤늦도록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그런 학생들에게 그야말로 보충수업을 시키셨던 셈이다. 제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때도 아버지는 '하면 된다‘를 가르치셨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배웠던 계기로 좋은 대학에 가게 됐으니 모두 박돈하 선생님 덕이라며 8명의 제자들이 찾아와 선생님께 큰절을 올렸다.

그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뒤돌아 눈물을 훔쳤었다.

일기를 소중하게 생각하셨던 아버지! '하면 된다'의 깊은 철학을 내면화하셨던 아버지는 어쩌면 지금 상상 속에서 아버지만의 일기를 쓰고 계실지도 모른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더욱 그립다.

【프로필】

문정박희숙 수필가/아동문학가

.충남금산군 제원면 제원리 출생

.금산문학 회원 (2008~2011년)

.금산여자고등학교총 동창회장 (2008 ~ 2012)

.한맥문학회 등단 (2011년)

.백수문학회원(2014~)

.대전아동문학회원(2023~)

. 전국지방선거 금산군 “나” (제원.군북.추부) 지역 출마 (2013년)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시 자유한국당 공관위원회 위원 (2018.4)

.국회의원 비서관 (2018.4 ~ 2019.4)

.세종FM98.5MHz 아나운서국장

.현) 세종시 홍보정책 특별보좌관

.현) 세종 인구문화센터장

◾저서

_월간 비단물결

_월간 세종우먼

_수필집 :“푸릇한 내음 꽃을 피우기 위한 몸짓이었다”

_대전아동문학선정 동수필 당선작 “하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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