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만사성(健康萬事成)
건강만사성(健康萬事成)
  • 나창호 수필가
  • 승인 2019.05.0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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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창호(수필가, 문예마을부대표)
나창호 수필가
나창호 수필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 이 글은 장삼이사 필부필부 가정집들 거실에도 많이 걸려 있고, 가훈으로 삼은 집들도 많을 것이다. 때로는 식당에 갔을 때, 잘 쓴 붓글씨로 액자에 넣어져 걸려 있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주로 한자로 쓰인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그냥 한글로 쓴 경우도 있다.

가화만사흥(家和萬事興).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흥성하다’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 글을 우리나라에서는 본 일이 없고, 이태전인가 중국 태항산에 갔을 때 본 기억이 난다. 잎이 두꺼운 중국산 상추와 함께 삼겹살을 푸짐하게 먹었던 어느 식당 집에서 봤던 것이다. 붉은 바탕에 황금색으로 쓰인 글씨가 액자에 넣어져 벽에 걸려 있었다.

나는 그때 중국 사람들은 이룰 성(成)자 대신에, 흥할 흥(興)자를 쓰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귀국한 후에 혹시 중국인들이 흥(興)자를 쓰는 별다른 이유나, 어떤 고사가 얽혀있나 하고 인터넷을 검색해봤지만, 별다른 뜻이나 고사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중국 사천성의 맵고 짠 훠궈(중국식 샤브샤브)요리 집의 상호로 사용하는 집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음식점 사장이 중국인이 아닐까 짐작될 뿐이었다.

건강만사성(健康萬事成). ‘사람이 건강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새겨지는 말이다. 다소 생소하다. 나는 이 글을 어느 가정집이나 식당에서 본 일은 없고, 야외 바윗돌에 새겨진 모습을 본 일은 있다. 처음에는 글씨의 흰 페인트 일부가 벗겨져 얼핏 ‘만사성’만 뚜렷이 보이는 관계로 ‘가화만사성’이려니 짐작하면서, ‘왜 야외에다 써 놓았을까?’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었다. 바윗돌은 갈마공원 내에 있다. 따라서 공원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으로 알려주려는 목적이려니 하는 나름의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는 무심히 지나다녔다.

나는 여럿이 함께 하던 1주 1-2회 아침 산행도 시들해지고(언제부턴가 불참자가 많아 자연히 그렇게 됐다), 헬스장에 다니며 별도의 운동도 하지 않는 관계로 평소에 가급적 많이 걸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시내버스 한 정류장을 먼저 내려 걷거나, 가끔씩 구도심에 볼일이 있을 때는 갈마역까지 걸어 나가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 등이 그렇다. 집에서 갈마역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25분쯤 걸려 걷기운동에 딱 알맞기 때문이다. 볼일을 마친 후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역으로 그리한다.

물론 매번 그리 할 수는 없다. 여름철 무더울 때나 겨울철의 추위가 심할 때는 그렇게 할 수가 없고, 그리하지도 않는다. 비가 심하게 오는 날도 궁상맞게 그리하지 않는다. 또 시내에서의 볼 일이 가뭄에 콩 나듯해 그리 많지도 않다. 시내에 나가는 날은 모처럼 중식 약속이 있거나, 중앙시장 헌책방을 가거나,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역전장을 구경하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때 등이다.

그런데 갈마역을 오가려면 갈마공원을 지나야 한다. 다른 길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 길이 좋다. 때로는 나무그늘에 앉아 잠시 쉴 때도 있고, 사색에 잠겨 있다가 올 때도 있다. 비록 큰 공원은 아니지만 그렇게 쉬다보면 갈마공원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주변에 아파트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노인층도 있고 아낙네도 있다. 걷기 운동도 하고, 운동기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 몇 번 갈마공원을 오가면서,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치던 바윗돌의 글씨가 ‘가화만사성’이 아니라 ‘건강만사성’임을 알게 됐다. 바윗돌 뒤로 커다란 누각-평소에는 뒷면과 옆면만 보며 무심히 지나쳤다-이 있는데, 엊그제는 문득 누각이 궁금하고 이름이 뭔지도 알고 싶었다. 누각 정면으로 가는 길에 바윗돌의 글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건강만사성’이었던 것이다. 아! 나는 그제야 느낌이 왔다. 갈마공원을 이용하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라고 그리 써놨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건강하려면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누각의 이름은 ‘평안루(平安樓)’였다. 가정이 화목하면 평안할 것이고, 사람이 건강하면 평안할 것이다. 바윗돌의 글이나 누각의 이름이나 나름 의미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왕관을 쓴다한들 내일 죽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황금을 천만 냥 가졌다한들 매일 병석에만 누워 지낸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문득 유태인들의 생활지침서라 할, 탈무드 한 구절이 생각났다. “재물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은 것은 많이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은 것은 모두를 잃은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가급적 많이 걸어 다닐 것이다. 운동을 누가 대신해주겠는가. 건강만사성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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