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제1호 귀국선 우키시마호를 아시는지...
독자칼럼-제1호 귀국선 우키시마호를 아시는지...
  • 문석
  • 승인 2019.08.2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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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로 일제는 1945년 8월 15일  패망했다.
 

일제는 1945년 8월 18일 재일 조선인들의 폭동을 방지한다는 미명하에 조선인 징용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부산으로 송환하기 위해 명령을 일본 해군에 내리고 일본 해군은 이 명령에 따라 4,740t급 일본 해군 군함 우키시마호에 강제 징용되었던 7,000여 명의 조선인을 태우고 일본 북동쪽에 있는 아오모리현[靑森縣]의 오미나토항[大溱港]을 8월 22일 떠난다.

부산항으로 향하던 우키시마호는 어찌된 일인지 이틀 후인 8월 24일 돌연 방향을 일본 중부 동해 연안에 있는 마이즈루항[舞鶴港]으로 돌렸고 마이즈루항[舞鶴港]으로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폭음과 함께 배가 폭발하여 두 동강이 나면서 침몰하고 말았다.

당시 현장을 목격자들에 의하면 사망자들이 1,000명이 넘었다고 하며 배에 탔던 한국인도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7,000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또 우키시마호에는 당시 총 1만 명이 넘는 징용 조선인과 그 가족들이 타고 있었고 최소한 5,000명이 사망하였다는 자료도 있다는 것,

우키시마호에 타고 있던 이들 대부분은 홋카이도[北海道]아오모리현 등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으로 끌려가 일제의 강제 노역으로 노예처럼 연명하던 노동자와 그 가족들로서 광복의 기쁨과 귀향의 즐거움을 채 느끼기도 전에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74년이 지나도록 오리무중이다. 만내(灣內)에 부설한 미군의 기뢰와 충돌해 우연히 침몰했다는 일본측의 주장과 함께 탄 일본 해군장교들이 부산에 도착했을 때 있을지도 모를 보복이 두려워 일부러 폭파시켰다는 자폭설 등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사람들의  주장이다.

일본 당국의 주장대로 배가 방향을 바꾼 것은 미국 점령군의 정선(停船) 명령에 따른 것이며, 배가 침몰한 것은 미군이 부설한 기뢰 때문이라고 한다면 폭발 당시 물기둥이 크게 솟구쳤어야  했다. 그런데 생존자들은 물기둥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일본은 함께 탄 일본 해군장교들이 부산에 도착했을 때 있을지도 모를 보복이 두려워 일부러 폭파시켰다는 자폭설을 주장하나 이또한  어불성설이다  폭발 당시 배 안에는 일본인은 없었다고 한다. 폭발이 있기 전에 구명보트 1정이 떴는데 무슨 일인지 이 구명보트가 일본쪽으로 돌아갔는데 생존자들은 돌아가는 이 구명보트 안에 일본인들이 타고 있을 것으로  증언하고 있다.

당시 홋카이도[北海道]아오모리현 등 일본 도호쿠[東北]지방에서 우키시마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나돌아 배 타기를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대부분의 조선사람들은 부산항으로 오기 위해서 우키시마호라는 배를 탔고 일본 당국은 배에 최대한 조선인을 싣으려고 강제징용자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배는 한 대 뿐이라며 협박에 가깝게 권유했다고 한다.

우키시마호 침몰사고는 일본이 저지른 대량학살사건이다. 이와같은 엄청 큰 사건이 벌어졌음임에도 당시 일본에 언론사가 많은데도 기사 한줄 나지 않았다. 당시 일본에서 언론사을 통제할 수있는 세력에 의해 우키시마호 침몰사고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을 것으로 추정되고 우키시마호 침몰사고는 내부의 폭발로인한 대형사건임에도 언론에 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본 당국의 비호 아래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럼에도 일본 정부는 당시 국가가 징용자에 대한 수송책임이 없었으며 폭침은 미국이 부설한 기뢰로 인한 것으로 불가항력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아직까지도 진상 조사나 공식 사과는 커녕 관련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는 등 어처구니 없는 책임 회피 행각만 계속하고 있다.

귀국선 제 1호 우키시마호는 수많은 강제징용조선인들과 그가족들을 태운 채 부산항으로 떠났지만 오지 못하고 일본 근해에서 폭발음과 함께 차디 찬 바다 물속으로 그렇게 가라 앉았다.

우키시마호 침몰사고가 74년이  지났지만  그 어마어마한 폭발음과  강제징용조선인들과 그가족들의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방금 있었던 일처렴  생생하게  들리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1923년의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대학살도 생생하게 생각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문석-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보도 및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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