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정월대보름
  • 임 솔
  • 승인 2018.03.0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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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박춘우



농촌 마을에서는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날까지 15일간은 축제기간이다. 보름 동안 근동의 마을을 도는 지신밟기 풍물패의 ‘지잉 징~ 지잉 징~’하고 징하게 울어대는 징소리가 축제의 배경 음악이다. 어른들은 낮에 사랑방 마당에서 멍석을 펴놓고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소리 지르며 막걸리 내기 윷놀이 판을 벌였고 밤에는 화투놀이를 즐겼다. 우리도 낮에 동산에서 연날리기를 하거나 대나무로 만든 물총 쏘기를 했고 밤에는 쥐불놀이나 동네 여자애들과 ‘I am ground’ 놀이, 화투놀이를 하고 놀았다.

대보름 전날 저녁에는 쌀, 보리, 조, 콩, 팥 다섯 가지 곡식을 넣고 지은 오곡밥을 나물과 같이 먹었다. 세 집 이상의 것을 먹어야 그 해 운이 좋다고 해서 밤이면 몰래 이웃집 정지에 들어가 오곡밥을 훔쳐 먹기도 했는데, 인정 많은 어머니는 아예 우리 집 가마솥 안에 오곡밥을 담은 그릇을 여러 개 넣어 놓았다. 한밤중 부엌에서 ‘딸그락 딸그랑’ 솥뚜껑 여는 소리가 나면 “애들아, 정지에 서생원님이 오셨구나.” 하시며 웃으셨다.

보름날 아침 해가 뜨기 전 새벽이 되면, 평소에 나를 유난히 챙겨주시는 동네 형이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내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다. 형이 아침부터 웬일인가 해 아무 생각 없이 ‘예’하고 대답하면 그 형은 냉큼 “너 먼저 떠우. 더위 하나 팔고.”라고 말하며 동네가 떠나갈 듯 통쾌하게 웃었다. 나는 너무 분하고 억울해 가슴을 치면서 올해 여름 삼복 날에 더위를 먹고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보름날 아침 식사는 팥 넣은 찰밥을 나물국과 함께 먹었으며, 어른들은 귀가 밝아지고 그 해 1년 동안 즐거운 소식을 잘 들으라고 데우지 않은 청주를 귀밝이술로 한 잔씩 드셨다. 식사 후에는 부럼을 깨물면 일 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고 이가 튼튼해진다는 말에 잣이나 밤, 땅콩, 추자 등을 나이 수대로 깨물다가 온종일 이빨이 얼얼하기도 했다. 아침 식사가 끝날 무렵이면 해마다 어김없이 복조리 장수가 왔으며, 할머니는 복조리를 서너 개 사서 조리마다 복이 가득 담기기를 바라며 방문 앞 기둥에 걸어 놓으셨다.

보름날 오후가 되면 마을 앞 고래실논에서 동네청년들이 커다란 오리나무 세 그루를 잘라다 묶어세우고 그 사이 사이에 마른 장작이나 청솔가지, 집 등을 채우면서 대보름날의 하이라이트 달집을 만들었다. 그동안 우리는 동산에서 연날리기하다가 연줄을 끊고 정들었던 연을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모든 액운을 연이 보듬고 멀리멀리 날아가기를 기원하면서. 저녁이 돼 뒷동산에서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르면, 동네 사람들은 달집을 태우며 건강하고 돈 많이 벌고 자식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큰소리로 “망우려! 망우려!”를 외쳐댔다. 특히, 노처녀 노총각들은 올해에는 꼭 시집 장가를 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고 또 빌면서.

망우려 불이 다 삭아질 때면 동네 청년들과 아이들은 손에 횃불을 들거나 뻘건 숯불을 넣은 구멍 뚫린 깡통을 돌리며 앞 동네 동수 청년들과 싸우러 나갔고 냇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돌을 던졌다. 그러다 화가 난 동수 청년들이 냇물을 건너는 기척이 보이면, 언제나 쪽수에서 밀리는 우리 동네 전사들은 꽁지가 빠지게 퇴각해야만 했다. 패잔병처럼 터덜터덜 마을로 돌아오면서 작은 동네의 설움을 한탄하며 고개를 든 순간 보름달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우리를 위로해주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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