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유사(風聞遺事)-26
풍문유사(風聞遺事)-26
  • 임 솔
  • 승인 2018.04.1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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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안 남일우체국장


금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외지에서 학교를 다녔고 직장생활을 했다. 25년 이상을 객지생활을 하다 고향 금산에 들어와 생활을 하면서 제일먼저 떠오른 것이 고향에 와서 "난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화두가 됐다. 무엇을 남긴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닐진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를 말해야겠다.

외지에서 생활을 하면서 금산에서 태어나 자랐으면서도 금산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보니 금산 사람들은 그저 인삼이나 먹고 인삼농사를 지어 돈이 조금 있고 다른 지방 사람들보다 체력이 튼튼하다는 것 외에는 자랑할 만한 것을 알지를 못했다.

대체적으로 금산남자들이 체력적으로 강하다는 것은 일반적인 것 같았다 여름에 인삼수확시기에 이삭을 줍다 쓱쓱 닦아 먹기도 하고 다른 지방 사람들보다는 좋은 건강식품을 가까이 대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했고 또 금산이라는 곳이 거의 산악지형으로 분지를 형성하다보니 그때까지만 해도 걸어 다니는 일이 일상화돼서 잠재적 건강운동을 많이 한 탓이기도 했으리라 짐작을 해보았다.

글을 조금 쓴다는 핑계로 남긴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그쪽으로 해보았다. 먼저 금산에 흐르는 강이 금강이다 내가 금강에 대해 글을 쓴다면 나보다 먼저 금강에 대해 아름다운 글을 쓴 선배님들을 어찌 뛰어넘을 수 있나 여기서 뛰어 넘는다는 것은 선배님들이 써놓은 글 이상으로 금강을 알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자신감의 상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강을 빼고 나서 금산에는 충남에서 제일 높은 서대산을 포함해 명산 진악산이 있는데 이도 아무리 노력을 해도 노래가사로 아주 유명한 청양 칠갑산을 넘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은 것이 금산이 분지지형이다 보니 유독 넘나드는 재가 많아서 그 재를 소재로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
분지인 금산으로 통하는 곳을 10통이라고 한다. 10통 중에 고개가 몇 개 있는데 이중 지금 살고 있는 남일면에 있는 솔재를 글의 소재로 삼고 글을 쓰고자 했다. 솔재는 위도상 충청도에서 제일 남쪽에 있는 고개이다. 정동쪽으로 쭉 위도선을 그으면 포항 호미諛같은 위도에 있는 그런 충청도의 땅끝 재인 것이다.

이곳을 통해 항상 남쪽의 봄바람을 먼저 맞으며 북쪽의 겨울바람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아주 작은 고개이지만 충청도에서는 금산에서는 아주 의미 있는 재가 돼서 오늘도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있는 것이리라.

태조이성계가 넘나들며 속금산(마이산)의 기운을 바라보던 재 솔재를 넘으며 그 기운을 잠재우고자 만인산에 태봉을 안치했고 딘소장이 이 고개를 넘어 남쪽으로 내려가다 정천에서 사로잡혀 포로가 되기도 했던 역사와 애환이 흐르던 고개 솔재 그 충청도 땅끝재 솔재가 이제는 용담댐 물을 금산 사람들이 먹기 위해 그곳에 상수원을 품으려고 조용하던 고개가 건설의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물이란 생명인 것이다. 사람들의 힘에 의해 사람과 바람만 넘나들던 솔재가 생명의 물이 넘어오는 고개가 돼 영원히 금산 사람들을 살리는 희망의 재가 돼 생명의 젖줄을 넘겨주는 아름다운 재로 오래 오래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詩한 수 남긴다.
 

솔재 가는 길
방아고개 조금 더 가면
쓰러져 가는 꽃재집
백년기와 날아다니는 소리 들린다
비실넘어 한참을 걷다보면
자귀나무 흐늘거리며
헛방귀뀌는 소리 들린다
범재를 넘어
탕근암 근처에선
범재에서 쫒겨온 도깨비들
웃음소리가 나무사이로 돌아다닌다
장고개에서 숨 한번쉬고 나면
망태골 갈미봉이
하늘 떠받치는 것을 볼수가 있지
밭으로 변해버린 소아장근처 보리밭에는
보리깜부기가 한참이었지
그렇게 잊고 가다보면
있는 듯 없는 듯 솔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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