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금산인삼축제와 백령성
[칼럼] 금산인삼축제와 백령성
  • 백세진
  • 승인 2020.09.11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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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뫼미디어협동조합 백세진
비단뫼미디어협동조합 백세진
비단뫼미디어협동조합 백세진

우리 금산에서는 올해 금산인삼축제를 준비하는 조용한 움직임이 있다.

코로나 19의 어려움 속에서도, 수해로 인한 피해 속에서도 그동안 38년 이어져온 금산인삼축제의 명맥을 잊고 좀 더 나은 밝은 미래를 맞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금산군에서는 열심히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축제는 10월 8일부터 18일까지 비대면(온라인)을 주제로 하는 행사와 코로나 19의 확산을 최소화하는 약간의 체험행사로 치르는 것을 주요 골자로 금산축제관광재단에서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금산의 남서쪽 금남정맥의 한 산줄기에 위치한, 잊혀 가고 있는 옛 고성 백령 성(남이면 역평리)에서는 옛 선조들의 모습을 찾으려는 3차 유적 유물 발굴조사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시행. 수석연구원 정제원 이하 2명의 연구원)

현재 백령성은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이다.

백령성
백령성

금산군에는 약 40여 개의 지정된 문화재가 있으나, 역사문헌에 보이지 않는다, 명확한 고증이 어렵다, 등등의 이유로 소외돼 온 비지정 문화재가 군 전역에 산재되어 있다.

20년 전에 충청남도에서 도 전역의 문화재 지표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이때 우리 금산군에도 680여 개의 지정, 비지정문화재가 조사되어 문화재 지도가 만들어진 바 있다.

백령성
백령성

필자는 7년 전에 금산으로 귀촌한 사람이다. 40여 년간 우리 한국산이 좋아 산행을 하였으며 자연스럽게 산주 위의 문화재를 접하며 문화재에 관심을 가져왔다. 금산에 와서도 주변의 산들을 자주 다니고 있다.

항상 새로운 산행을 준비할 때는 대상 산의 산행 루트와 주변 문화재 등을 조사하여 다니곤 한다. 그런데 금산의 산들을 조사할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산성과 봉화대 이야기였다. 2년 전부터는 금산에 있는 산성과 봉화대를 전부 찾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문헌과 자료를 조사하던 중 소중한 금산군 문화재 지도(2000년도의 지표조사를 맡은 한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행)를 접하게 되고, 비로소 대략적인 실체를 알게 되어 현재 찾아다니고 있다.

백령성
백령성

금산에는 현재 알려진 산성과 봉화대 30여 개가 있으며, 대다수가 삼국시대의 특히 백제와 신라 그리고 가야의 국경선에 위치하여 치열했던 1400여 년 전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성들이다.

백령성은 2000년 이전까지는 학자들의 관심도 못 받았으며, 조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이었으나, 2004년 1,2차 발굴조사 결과 여러 유물과 저수용 목곽고, 구둘 등이 발굴됐다.

충청남도 기념물(1990년 지정)에서 한 단계 이상 승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학계가 인정하지 않아(그동안 금산군이 인정받으려 한 노력은 여러 군데에서 보인다.) 아직도 승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발굴로 좋은 성과를 기대하여 본다.

조사하면서 알게 된 것이, 그동안 사학계에서는 문헌에 나타남과 실체, 쓰임새 등이 확실한 것만 역사(문화재)로 인정하고 있으며, 금산은 백제의 동쪽 변방지대라 백제 중심지역보다 조사되거나 발굴된 유물, 유적이 적어, 많은 부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2000년 이후 사학계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G.I 기법(최첨단 장비를 사용하여 지리 지형, 공간 지형 지리로 역사를 보는)으로 문화(사)재를 연구하는 젊은 사학자들이 생겨나 우리 금산에도 적용된 논문들이 여러 편 보인다는 것이다.

이 논문들을 살펴보면 우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산성들의 역할과 존재감을 확실히 알 수 있으며, 앞으로 발굴, 보존하여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의 연결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백령성의 존재감과 역할은 G.I 기법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660년 김유신의 신라군이 백제를 멸망시켰을 때, 백령성을 통과하여 황산벌로 진출했을 거라는 몇몇 학자의 주장만이 있을 뿐 존재감을 찾을 수 없었다.(물론 옛 지도를 보면 백령성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들도 있다. 이러한 지도들은 조선 중 후반 지도들이다. 이 시점까지도 민초들이 길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2000년 후의 논문들에서 지적하는 것을 보면, 백령성의 역할과 존재감은 더욱 나타난다.

642년 경남 합천에서 벌어진 백제와 신라의 대야성 전투는 백제군이 부여 – 은진(동방성: 현재의 논산 은진면) - 운주 – 백령성 – 진안 – 장수 – 합천으로 진출하였으며, 이때 교통로(백제군 이동로)의 중간지역으로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 공간 지형 지리 역사로 보면 확연하게 나타난다.

660년 백제가 사라지고 난 후, 백령성의 역할은 논산, 완주, 전주지역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교통로(우마차가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길)로 활용되고 있다가, 300년 후 견훤이 후백제의 수도를 완주에 세우고 난 후, 동쪽 지역을 견제할 목적으로 현재의 남이면 대양리에 경양현을 만들고, 이때 백령성을 재정비하여 동쪽 지역의 방비에 힘썼다는 것이 기록에서 보인다.

기록에서 보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200여 m의 성곽을 가진 성이 아니라, 4km 정도의 큰 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근처에 존재했었다는 봉화대까지의 성곽로 까지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필자는 하고 있다.

좀 더 넓은 지역을 발굴하면 이러한 것이 밝혀질 텐데, 이번 발굴처럼 금산군이 어렵게 마련한 아주 작은 예산으로 건물 형태가 있으리라는 지역만 발굴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필자는 이번 백령성 3차 발굴이 문화재청에서 올해부터 적용하고 있는 소외된 지역의 문화재를 발굴, 보존하려는 정책의 일환인 줄 알았으나, 금산군이 단독 시행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우리 금산군민이 적극 지지하여야 할 일이 아닐까 한다.

후백제 이후의 백령성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조선시대로 넘어와서 백령성 아래 동네 남이면 역평리에서 제원면 권역에 말먹이로 쓰이는 목초를 공급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조선시대 말까지 교통로가 남아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현재는 잘 포장된 635번 지방도로가 백령 성이 위치한 옆구리에 생겨나 이용되고 있지만, 역평리에서 건천리로 넘어가는 옛길은 비포장도로로 아직도 옛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백령성 3차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연구원과 접촉하여 본 결과 조사는 비공개로 하고 있고, 제한된 지역만 공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중요한 일은 결과가 미미할지라도 비공개로 할 것이 아니라, 전 군민이 알게 하여 과거와 만나는 하나의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거의 흔적을 발굴한다는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과거와 연결되어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해 주고, 좀 더 나은 미래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현재 비단뫼 미디어 협동조합에 소속되어 있다.

우리 조합은 올해 2가지 일을 하고 있다. 하나는 문화재청에서 하는 지역문화유산교육사업과 또 하나는 20년 금산인삼축제를 SNS를 통해 영상과 글로 널리 알리는 홍보사업을 하고 있다.

지역문화유산교육사업을 하면서 우리 군의 학생들이 우리 지역의 문화재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지역의 문화재를 알게 함으로써,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일을 이번 발굴조사에 접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참여하는 발굴조사(자라나서 다른 지역에서 살게 되어도, 내 지역을 잊지 않는 좋은 추억거리로..), 그리고 이것을 2020년 인삼축제의 하나의 축제 프로그램으로 만들면, 금산 지역을 널리 알리는 축제의 장이 만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달 전 무렵에 이러한 발굴조사가 진행될 거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미리 준비를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일의 성사를 위해 움직이고 있지만 과연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현재 심정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이 일을 이루어 나가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써 본다.

그리고 현재 백령성 3차 발굴조사를, 성스러운 사명감으로 알고 열심히 조사하고 있는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들 에게도 많은 군민들의 성원이 있었으면 한다.

필자는 현재 추부면에 있는 마전리 산성을 주목하고 조사하고 있다.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정상에서의 조망이 뛰어나며.., 과거의 선조의 흔적과 같이 숨 쉬며 조용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러한 공간으로 만들어, 현대와 공존하며 보존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산성으로 적합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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