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장마
  • 임 솔
  • 승인 2018.07.1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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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박춘우



칠순을 코앞에 둔 나이에 평생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죽음과 가장 근접했던 때는 장마철이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여름만 되면 봉황천에 나가 물놀이하는 게 일과였다. 장마가 지고 이틀 후 아직도 누런 황토물이 넘실대며 흘렀지만 더위에 참다못한 동네 조무래기들은 봉황천에 나갔다. 처음에는 6학년 형들도 겁이 났는지 물이 흘러가는 것을 구경만 하다가 하나 둘 물가 얕은 곳에서 물놀이를 시작했다. 나는 절대 물에 들어오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면서.

물가 바위에 걸터앉자 물이 소용돌이치며 포말을 그리는 것을 바라보다가 바지를 걷어 올리며 다리만 물에 담글 생각을 했다. 물가에 들어서는 순간 평소에는 땅이었던 곳이 움푹 파여 있었고 나는 물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려 달라고 소리를 쳤지만 악몽을 꿀 때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때 죽을 운이 아니었는지 물에 떠내려가면서 세 번째 머리를 솟구친 순간 아래에서 놀던 형 하나가 무심결에 나를 보았다. 그 형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형들이 돌아가며 필사적으로 인공호흡을 하는 바람에 나는 깨어났고 목숨을 건졌다. 정말 구사일생이었다.

두 번째 사건은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일이다. 아버지가 급한 일로 집을 비우게 돼 내가 밤에 인삼장을 지키러 가야만 했다. 인삼장은 동네에서 2km나 떨어진 깊은 산속에 있었다. 장마철이고 그날 밤 많은 비가 예고돼 있었지만 인삼수확이 얼마 남지 않아 꼭 가야만 했다. 밤새 천둥 번개에 폭우가 쏟아져 작은 원두막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거의 뜬 눈으로 기나긴 밤을 보냈다.

아침이 되자 비가 잦아들었고 이때다 싶어 집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안골 쯤 왔을 때 갑자기 발밑 10여 미터 아래에서 천둥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벼락이 친 줄 알았다. 너무 놀라 반 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지만 내 눈에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흙더미에 실려 두둥실 떠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산사태였다. 흐르는 물을 뚫고 강을 건넌다는. 조금만 출발이 빨랐거나 도중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지체하지 않았다면 나는 흙 속에 묻혔을 것이다. 그 후 동네사람들은 어린 나이에 장맛비 속에서도 인삼장을 지키러 갔다며 통이 크고 담력이 세다고 추켜세웠다. 어떤 사람들은 산사태에서 목숨을 구한걸 보면 명주실  만큼이나 명이 길거라고 쑤군댔다.

그때부터 나는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만 되면 불안하다. 산사태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다. 학교에 근무 할 때도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높은 석축이 무너질까 불안해 학생들이 석축 아래 접근하는 것을 유별나게 막곤 했었다.

"여름 철 장마 때 산사태 괜찮을까요? 산은 높지 않지만 경사가 있어놔서."

"토질이 마사라서 비가 오면 다 스며들고 나무가 많아 산사태 위험은 없지요."

고향에 돌아와 집을 지을 때 맨 처음 터파기를 하면서 나눈 대화들이다. 집 뒤 쪽으로 동산이 있어 평소에는 운치도 있고 정말 좋지만 비가 많이 와서 지반이 약해지는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지는 밤이면 잠을 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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