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베란다 ‘푸른 농원’ 겨울나기
[기고] 베란다 ‘푸른 농원’ 겨울나기
  •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 승인 2021.02.1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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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오기 마련이다. 올 겨울은 새해 첫날부터 흰 눈이 자주 내려 예년과 다른 하얀 겨울의 멋과, 영하 10도를 한참 밑도는 동장군의 매서운 맛을 여러 차례 보여주더니, 입춘이 지나고 나서부터 날씨가 몰라보게 푸근해졌다.

나는 그동안 매서운 찬바람이 새어들까 봐 베란다 바깥창문 틈새마다 붙였던 누런 테이프를 떼어냈다. 더 이상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강추위는 없지 싶어서다. 내가 이렇게 창문 틈새마다 테이프를 붙였던 것은 지난겨울 추위가 하도 요란해서 베란다에 놓아둔 60여 분의 풍란과 다른 화분들이 동해를 입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정남향으로 햇살이 잘 드는 13층 베란다의 ‘푸른 농원’(풍란을 비롯한 푸른 식물이 많아 내가 부르는 이름이다)에도 어느덧 봄빛이 가득하다. 아침 햇살을 제일 먼저 받는 ㄱ자진 귀퉁이에 받침대를 놓고 올려둔 긴기아난의 꽃대들이 한 뼘이 넘게 자랐고 꽃대마다 보리알 같은 꽃망울을 다닥다닥 달고 있다.

아랫부분은 물에 불은 보리알 같고 윗부분은 마른 보리알 같다. 흰 꽃이 피고 향기가 좋아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오며 아는 이웃들에게 촉 나눔을 몇 차례 했는데도 어느새 또 화분이 터져라하고 세력을 키웠다.

맨바닥에 놓아둔 군자란도 꽃대를 세 대나 올리고 있다. 지난겨울이 유별나게 추웠던 탓에 꽃들이 더 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바닐라 향이 난대서 지난해 초겨울께 노은화훼단지에 일부러 가서 들여온 디네마는 노란 꽃잎에 하얀 혀를 내민 꽃을 몇 송이 피웠는데 향기가 기대한 만큼 진하지 않다.

노란색 작은 나팔 모양의 꽃을 피우는 해피트리와, 밑 부분이 고구마처럼 굵은 벤자민고무나무와, 장미향이 나는 둥근 잎 허브와, 계절을 모른 채 빨간색 작은 꽃들을 줄기차게 피워내는 줄기에 잔가시 달린 잎 넓은 선인장도 베란다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풍란에 신경을 쓰느라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어도 생생하다.

베란다는 집사람이 다육이를 기르는 공간이 3분의1쯤 되고, 나머지 3분의2는 내가 풍란과 석곡을 키우는 공간이다. 거실에서 바깥을 향해 오른쪽이 다육이 공간이고 나머지 왼쪽 공간이 석부작·목부작들과 풍란 화분대와 석곡 화분들이 놓인 내 관리 공간이다.

집사람은 같은 교회에 다니는 권사님한테서 얻었다며 20여 종의 다육이를 갖다놓고 애지중지하는데 나는 별 관심이 없다. 어느 때 보면 기다란 꽃대에 꽃들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향기도 없고 꽃들도 별로여서다.

나는 다육이에게 물을 주는 일이 없다. 언제 주어야하는지도 모르고 언제 다육이가 목말라하는지도 모른다. 집사람도 다육이는 자기가 물을 줄 것이니 따로 주지 말라고 나한데 외려 신신당부한다.

내가 보기에 한 달에 겨우 한번이나 주는 것 같은데 다육이는 물을 많이 주면 웃자라서 못쓴다니 그러려니 할 뿐이고, 속으로 옳다구나 잘됐지 싶은 것이다. 불감청이나 고소원 아닌가.

내가 풍란 석부작과 목부작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고, 풍란 화분을 60여 분 갖게 된 것은 조금은 의도된 일이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도솔산 등산을 홀로 하고 돌아오던 중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골짜기 길로 들어섰다.

늘 다니던 길이 무료해서 색다른 길을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날 좁고 외진 길가에서 아주 오래된 아카시나무 고목 두 개를 주워들고 집에 돌아왔다.

하나는 겉 목질 부분만 남고 속 부분이 모두 썩어 철물점에서 쇠 솔을 사다가 속을 박박 긁어내고, 썩은 뿌리부분과 이끼 낀 껍질을 모두 벗겨내야 했다. 다른 하나는 뿌리 부분만 썩고 등걸 부분은 멀쩡해서 뿌리의 썩은 부분과 상한 겉껍질의 일부만을 제거하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그냥 뒀다.

한동안 사포질을 하는 등 고목 손질을 더한 후에 집에 있던 풍란화분을 헐어서 붙였다. 하나는 나무속을 파낸 윗구멍에 거의 화분 두 개 분량의 풍란을 뭉텅이 채로 속 뿌리를 넣어서 심고, 겉에 남은 뿌리는 나무표면에 강력본드로 붙였다.

다른 고목 하나에는 몇 촉만을 오른쪽 발뒤꿈치 부분에 본드로 붙였다. 풍란을 붙여놓고 보니 고목 하나는 큰 키의 장닭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앞을 보는 모습 같고, 다른 하나는 오른 손으로 긴 칼을 쥔 쥐(鼠) 장군(내가 보기에 입이 뾰족한 쥐가 머리에 관을 쓴 모양이다)이 늠름하게 행진하는 모습 같다.

목부작 풍란이 새하얀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으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다. 꽃 피는 초여름이면 나에게 큰 즐거움을 안겨준다.

또 하나는 관솔 아래 부분에 소엽을, 윗부분에 작은 대엽을 붙인 보기 좋은 작은 목부작이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것을 작년에 입찰경쟁 끝에 구입한 것이다. 이놈에 붙인 풍란들은 아직 어린데다 온전히 활착이 되지 않아서 꽃을 보지는 못했다.

한 4년 전쯤 일이다. 아파트 1층 현관문 밖으로 나가다 왼쪽 화단을 보니 못 보던 돌(수석)들이 방치돼 있었다. 누군가 내다버린 돌이었다.(나중에 같은 통로 3층에 사는 분이 버렸다는 걸 알게 됐다. 아주머니가 베란다 복잡하다고 하도 야단을 해서 할 수 없이 모양이 빠지는 돌들을 골라 버렸다고 했다.

나는 돌을 내가 갖다가 풍란을 붙였다며 덕분에 횡재했다고 말해줬다.) 내가 보기에 돌 모양들이 좋고 나로서는 탐석을 한다 해도 구할 수 없는 돌들이었다. 나는 그중에 보기에 좋은 돌들을 골라 집으로 가져왔다. 모두 모양이 각각인 7개였다. 돌들이 제법 커서 너 댓 번을 왕복해야 했다.

나는 이 돌들에다 값이 비교적 저렴한 소엽풍란들을 사다가 붙였다. 그런데 처음에 몇 촉씩만 붙이고 관리를 부실하게 해서 그런지 풍란들이 비실비실했고 여태껏 꽃조차 보지 못했다.

바탕이 찬 돌이라서 그런가 하고 무심히 지내다가 물 관리를 부실하게 해서 그렇다는 것을 작년 여름에야 깨닫고 풍란(설산과 금루각 등)을 사다가 더 붙여주었다. 돌아올 여름에는 몇 송이라도 꽃을 피우지 않을까 싶다. 개화할 나이의 풍란을 붙였기 때문인지 예전 같지 않고 풍성해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또 하나 아끼는 나도풍란을 붙인 돌은 어느 해인가 친구와 같이 무주구천동에 놀러갔다가 나제통문 앞 하천에 잠시 발을 담그고 쉬던 중에 눈에 띄어 주워온 잡석인데 시커멓게 큰 두 눈만 있고 코도 입도 없는 외계인 얼굴을 하고 있다. 이놈에 올린 대엽풍란도 활착이 여의치 않아 그동안 꽃을 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머지않아 피우지 싶다. 지금은 뿌리가 돌에 단단히 붙고 잎장 수도 늘었기 때문이다.

나는 돌에 붙은 풍란들이 꽃을 피우지 않아도 조급해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키우는 재미가 있고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기 때문이다. 식물도 잘 살펴 주면 생기가 나고 그냥 방치해 두면 시들함을 느낄 수 있다. 식물도 사람의 손길과 사랑을 느끼지 싶다. 그래서 사람들이 곁에 두고 키우는 식물을 반려식물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따뜻한 햇살을 받고 있는 60여 분의 풍란 화분들을 살펴보니 벌써 뿌리를 내리고 천엽을 키우는 생기발랄한 놈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잎이 약간씩 쭈글쭈글하고 거친 느낌이 든다.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는 겨울동안의 휴면을 위해 물을 굶기고(가끔씩 스프레이는 했다) 어쩌다가 한번 조금씩 주었기 때문이다. 풍란도 휴면해야 봄이 되면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란다고 한다. 나는 주로 난 카페에 들어가서 이런 정보를 얻지만 미심쩍으면 풍란전문점에 직접 물어도 본다. 아직 모르는 게 많기 때문이다.

문득 풍란을 본격적으로 들이기 시작한 지난해 여름이 떠오른다. 나는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작년 3월말에 발병하신 아버지를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여의고 실의에 빠져 있었다.

갑작스런 일이라서 장례를 모신 후에 허탈감에 빠져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계절이 쉼 없이 흘러 초여름의 신록이 한창일 때도 그저 집에만 있었다.

삶이 무척 무료할 때 풍란이 새하얀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겼다. 삶이 따분한 때라서 더없이 반가웠다. 나는 풍란향이 짙게 풍기는 초저녁만 되면 베란다에 낚시용 접의자를 펴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었다. 그게 유일한 낙이었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 계기도 되었다.

나의 풍란 구입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석부작한 풍란은 꽃을 피우지 않고 있었고, 목부작 두 개에서 몇 송이가 피었다지고 했을 뿐 화분 채인 풍란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기왕이면 풍란을 다양하게 구입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풍란을 구입하려면 꽃가게에 가야했다. 오랜만에 집을 나와 서대전역 사거리께 꽃가게 단지에 갔지만 풍란전문점은 없었다. 풍란은 여벌로나 팔았다. 할 수없이 무지 풍란을 주로 사다가 부실해 꽃을 피우지 않는 석부작을 보충했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풍란인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카페 3곳(풍란 나눔마당, 풍석사, 풍미인)에 우선 가입부터 하고, 전문점 사이트도 찾아봤다. 카페에 회원들이 올리는 풍란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풍란은 2천 종이 넘고 새로운 품종도 계속해서 나온다고 했다. 희귀한 풍란도 많았다. 전문점의 가격도 천차만별이어서 한 분(盆)에 수백만 원, 수십만 원 단위도 수두룩했다.

고가의 난은 넘볼 수 없는 일이라서 구입기준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1∽2만 원 짜리를 구입하되 최대 5만원을 넘지 않도록 한다는 기준을 정했다. 꽃과 향을 즐기면 되지 비싼 난이 왜 필요하랴 생각했다.

때로는 난 카페에서 고수들이 유·무료 분양을 했는데 나는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분양(주로 유료)을 받는 방법으로 여러 종의 풍란을 확보하는 한편으로 풍란전문농장 사이트에 들어가서도 구입을 했다. 또한 경매사이트에 들어가서 경매를 통해 입수도 했다. 가능한 다양하게 구색을 맞췄다.

풍란은 흰 꽃이 주종이지만 홍색이나 황색 계통, 기화가 피는 종, 꽃의 꼬리가 3개인 품종, 잎에 복륜이나 호반 무늬가 드는 품종 등등 구색을 맞추다 보니 어느덧 60여 분이 넘게 되었다.

종자목이라서 1∽2촉 짜리가 많지만 한해 두해 키우다 보면 언젠가 대주가 되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꽃은 한두 촉 짜리에서도 볼 수 있고 3∽4촉 되는 것도 여럿 있으니 꽃을 보는 흥겨움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꽃을 보는 즐거움도 좋지만 촉수를 늘리는 재미 또한 있지 않은가.

다행이 풍란들을 지난겨울의 혹독한 추위로부터 지켜냈다. 이제부터 잠자는 풍란들을 깨울 것이다. 서서히 물주는 횟수와 물의 량을 늘리면서 키울 것이다. 풍란들이 새 촉을 달고 꽃대를 올릴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흥이 난다. 베란다 푸른 농원에도 따뜻한 햇살이 들며 생기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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