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비들목재의 무서운 추억
[수필] 비들목재의 무서운 추억
  •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 승인 2021.11.0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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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페이스 북을 보니 ‘지리산을 무박으로 종주했다‘는 후배 공직자의 글이 실려 있다. 대전에서 구례까지 밤 열차로 내려가 구례역에서 화엄사까지 택시로 들어가니 밤 12시, 바로 등산로에 들어서는데 앞서가는 사람의 불빛이 보여 안도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정년을 한 사람이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밤 산행을 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산짐승을 만나거나,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 놀랄 텐데, 담력이 세고 체력도 좋지 싶어 무척 부럽다.

불현 듯 20대 초반 때 밤에 혼자 고개를 넘던 무서웠던 추억이 떠오른다. 나는 70년대 초에 지방공무원공개경쟁채용시험에 합격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의 면사무소로 초임발령을 받았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였다.

그때 면직원들은 수시로 담당부락에 나가 농사지도 등 당면사항을 추진하고, 각종 행정자료나 통계조사 등을 해야 했다. 면서기생활을 시작한지 몇 달쯤 지났을 무렵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때 충남에서 제일 높은 서대산 뒤쪽에 있는 보광리 마을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보광리는 ‘육지 속의 낙도’라고 불린 내구역의 한 오지마을이었다.

내구역에는 산안 1,2리, 상곡1,2리, 보광리가 있었는데, 사기점, 자진뱅이, 배나무뜰, 골남이 등 재미난 이름의 자연부락이 많았다. 내구역에 출장을 가려면 면사무소에서부터 비포장 길을 따라 가야하는데 인적이 뜸한 비들목재를 넘어야 했다. 당시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 도보로 가야만 했는데, 출장할 일이 생기면 5개리 담당직원들이 모여 함께 넘어갔다. 서로 이야기하면서 가면 지루함이 덜하고, 비들목재를 넘을 때도 고단함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장꺼리가 많거나, 오후에 늦게 출장해서 미처 일을 마치지 못하면 부득이 이장 댁에서 1박을 하기도 했는데, 올 때도 일정 시간, 일정 장소에서 만나 함께 넘어 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함께 출장을 하며 비들목재- 재의 정상 끝에서 왼쪽 길로 계속가면 보광리, 오른쪽 길로 내려가면 산안리와 상곡리로 가게 된다- 를 넘는데, 길 한 복판에 전에 보지 못하던 두두룩한 흙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걸 본 나이 많은 누군가가 처녀무덤이라고 말했다. 처녀가 죽으면 길 가던 남자들이 밟아주라고 길에 묻는다는 것이었다. 진짜 그런 풍속이 있는지 장난의 말인지 몰랐지만, 가장 어렸던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러면 총각이 밟아줘야 한다”면서 흙무덤에 올라가 밟고 구르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대낮이었고 여럿이라서 무섭지 않아 그랬던 것인데 나중에 이로 인해 무서움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초겨울 무렵이었다. 군청에서 무슨 조사서인지를 빨리 보내라고 심한 독촉을 하는 통에 “내일 보내겠다”고 말하고, 서류검토를 하는데, 하필 보광리 이장직인이 누락된 서류가 한 장 나왔다. 예전 같으면 면에 보관한 보광리장의 목도장을 찍어 보내면 됐지만 얼마 전부터 이장직인제도가 새로 생겨서 꼭 이장직인을 찍어야만 했다. 난감한 일이었다. 며칠 후의 이장회의 때까지 기다리자니 군청의 성화가 불 보듯 뻔하고, 나이 든 이장에게 직인을 가져오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할 수 없이 내가 보광리에 다녀오기로 하고, 이장 댁에 행정정화를 걸어 “지금 넘어갈 테니 꼭 집에 계시라”고 말했다.

다소 늦은 오후에 떠나 길을 서둘렀지만 보광리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서 이장직인부터 서류에 찍고, 몇 가지 당면사항을 확인하고는 바로 나왔는데 산골 집 마당에는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이장이 “금방 어두워진다. 자고가라” 하는 것을, “지금 떠났다고 면에 전화나 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발길을 서둘렀다. 산길은 정말로 이내 어두워졌고, 아무리 발걸음을 재촉해도 길이 줄어드는 것 같지가 않았다. 어둠속에서 초생달처럼 길게 휘어진 희미한 길을 걷는데 길옆의 야산에서 산짐승들이 부스럭대는 소리가 연신 귀에 거슬렸다.

그런데 더 난감한 것은 비들목재를 넘는 일이었다. 비들목재가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생각과 함께 흙무덤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그럴 리가 없다‘는 다짐이 드는 한편으로, 또 한편에서는 어둠속의 흙무덤에서 무엇인가 불쑥 일어설 것 같은 무서운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었다. ‘공연히 장난을 쳤구나‘하는 후회가 들었다. 마침내 나는 비들목재에 접어들면 흙무덤을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재의 정상부위는 평평한 길이었는데 흙무덤은 길 한가운데에 있었다. 나는 흙무덤에 가까워질수록 길 오른쪽으로 바짝 붙어 고개를 돌린 채 걷고 있었다. 그런데 기분이 찜찜한 상태에서 흙무덤을 거의 지나쳤다 싶을 때였다. 길 안쪽에서 무엇이 쫒아오는지 지나가는지 스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털이 쭈뼛 섰다. (이판사판이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저절로 길 안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는데, 갑자기 시커먼 것이 눈앞을 휙 스쳐가는 것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우뚝 섰는데 이내 지독한 술 냄새가 바람결에 풍겨왔다. 사람이었던 것이다.

후유! 무서움 속에서도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길가로 걸으며 고개를 돌렸기 때문에 앞에서 오는 사람을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나와 반대 길을 가는 사람이었는데 허둥지둥 빠른 걸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마 그도 나처럼 자지러지게 놀랐지 싶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걸음을 재촉해 재 아래 평길에 이르자 다행이도 동쪽하늘에서 둥근 달이 떠올랐다. 환한 길을 따라 서둘러 면사무소에 도착하니 숙직하던 직원이 말했다. “아니, 금방 전화 받은 것 같은데 벌써 와?”

나는 그 이후로 야밤에 혼자 산길 걷는 것을 가급적 피해 왔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그래서 심야에 큰 산을 혼자 오르는 후배공직자가 더 대단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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