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나창호] 내가 피하는 술자리
[수필-나창호] 내가 피하는 술자리
  •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 군수)
  • 승인 2021.12.2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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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 군수)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 군수)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 군수)

술은 참 묘한 존재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기쁜 일에도 끼고, 슬픈 일에도 낀다. 부모의 생신 상 자리나, 자식들의 결혼식 같은 좋은 자리에도 술이 빠지지 않고, 산 자와 죽은 자가 이별하는 슬픈 장례식자리에도 술은 빠지지 않는다. 술은 즐겁거나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을 더 기분 좋게 하고, 슬픈 일이 있는 사람에게는 슬픔을 덜어주기도 한다.

또 술은 서먹서먹한 사람사이를 이무럽게 이어주고, 평소에 말이 없고 과묵한 사람도 곧잘 입을 열게 한다. 술을 마시면 그만큼 기분을 좋게 하고 용기와 배짱을 불러일으키는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술이 꼭 사람사이를 좋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술에 도가 지나치면 큰 소리로 언쟁하는 싸움자리로 변하기도 하는데, 기분 좋자고 먹던 술자리가 기분을 상하는 자리가 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술자리 뒤끝이 개운하지가 못하고 께름칙하다. 따라서 이런 술자리는 차라리 피하는 게 낫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간혹 술자리에서 언성을 높이며 언쟁을 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가지고 혈기로 다툰 것 같아서 부끄럽기까지 하다. 이제 나이 들어서까지 언쟁을 하거나,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술을 마실 수는 없는 일이라서, 술자리에서 가급적 말을 삼가려고 하지만 솔직히 술을 마시다보면 꼭 마음대로 되지만은 않는 것 같다. 술자리가 끝나고 나서 ‘말이 많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또 남의 얘기에 모순이 있거나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 해도 굳이 지적하려 들지 않는다. 자칫하면 술자리가 어색해지고 다툼의 빌미가 될 수 있어서다.

그래도 언제부턴가 나는 술자리를 가리고 있다. 술자리에서 자주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나, 습관적으로 술버릇이 좋지 않은 사람이 끼는 자리임을 알게 되면 이를 피한다. 술자리 요청이 오면 참석자들을 알아보고 그런 사람이 함께하는 자리이면 정중히 사양한다. 내가 쥐뿔도 없으면서 잘나서 그러는 게 아니다. 술만큼은 마음 편히 마시고 싶은 것이다. 술은 서로가 정답게 웃으면서 마셔야 기분이 좋고 술맛도 달다. 하지만 어찌하다 같이한 술자리라도 자기주장만 옳다고 고집부리며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이 끼어 있으면 술맛이 쓰다. 마음이 즐겁기는커녕 찝찝하고, 술자리의 뒤끝도 개운하지가 않다.

또 술자리의 대화는 오고가야지 누군가가 마치 무슨 강의라도 하는 양 일방적인 주장을 거듭하며 장황하게 말하면 지루하고 따분하다.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도 없는 주제를 가지고 열을 내며 이야기하면 말을 끊기도 그렇고, 그냥 듣기도 그렇고 난감하다. 참다못한 누군가가 반론을 제기하거나, 바른 말을 하면 버럭 하는데, 분위기가 이내 싸늘해진다. 나이가 들면 버렸어야할 버릇을 아직도 지니고 있어서다. 내가 술자리를 가리는 것은 이런 곤혹스런 자리에 같이 하고 싶지 않아서다. 싫은 소리를 마냥 듣고만 있자니 따분하고 말을 끊자니 싸움이 날 것 같은데, 이런 답답한 자리에서 술맛이 나겠는가.

나는 이제 두루두루 많이 어울리는 술자리 보다 소박하더라도 정겨운 사람끼리 만나서 웃으며 어울리는 술자리를 하고 싶다. 술을 마시는 것은 기분을 좋게 하려고 마시는 것이지 스트레스 쌓으려고 마시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의 삶과 건강이 앞으로 얼마나 허용될지 모르지만, 좋은 사람들 만나 좋은 술을 마시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을 텐데, 굳이 불편한 사람과 술자리하며 신경을 쓰고 싶지가 않다.

나에게는 이제 술자리도 양보다 질이 우선이지 싶다. 무분별하게 술자리를 하다 보면 건강을 해칠 염려도 없지가 않다. 여생이 심심치 않을 정도면 족하지 싶은 것이다. ‘만족할 줄 알면 늘 즐겁다(知足常樂)’고 하지 않던가.

그동안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모임인원 제한이 우심한 탓에 서로들 만나지 못했었지만, 점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으로 중단됐던 산행모임을 다시 하게 되고, 산행 후에 시원한 술자리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우선 매주 수요일에 갖는 산행모임은 인원도 적당하고 마음도 툭 터놓는 친구들이라서 좋다. 이 술자리는 늘 유쾌하다. 월 1회 하는 산행 모임도 둘인데, 이 모임들도 구성원이 옛 직장 동료들이라서 부담이 없고 늘 화기애애하다.

또 하나는 동네 사람 4명이 매월 1회씩 돌아가며 모임을 주관하는데 역시 술맛 나는 모임이다. 여기에다 코로나 사태가 안정되면 제법 많은 인원이 모이는 짝수 달의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재개될 것이고, 매월 하는 부단체장 출신 모임도 재개될 것이다.

또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고향 친구 몇 명과의 술 모임도 때때로 있고, 가뭄에 콩 나듯 하지만 집사람의 모임 때문에 어울려야 할 술자리도 더러 있다. 가끔이지만 문학 활동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동아리어울림도 있으니 나에게 술자리는 이만하면 족하지 싶다. 더 술 욕심을 내어 무엇 하겠는가. 굳이 불편한 자리에서 쓴 술을 마시려는 욕심까지 낼 필요는 없지 싶다. 나에게는 이제 술자리도 과유불급이지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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